코스피는 10월 2일 7003.74에서 7거래일 연속 하락해 5500선까지 밀렸다. 급락 와중에도 돈을 빌려 주식을 산 신용 융자 잔액은 34조원을 넘었다. 상승장 끝자락에 진입한 다수의 개인이 하락 비용을 가장 크게 떠안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실제 반대매매(담보 부족 시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로 파는 것) 금액은 2981억원에 달했다.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한 개인의 자금이 급격히 강제처분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코스피 5000 정책은 부동산에 묶인 자산을 금융시장으로 옮겨 더 많은 국민이 성장의 과실을 나누게 하려는, 일종의 소득정책이었다.
2025년 한 해 동안 재산소득은 9.8% 늘었지만, 근로소득은 2.4% 느는 데 그쳤다. 일하는 것만으로는 격차를 좁힐 수 없는 구조다. 한국은행도 지난 6월 이를 ‘복합 양극화’ 로 진단하며, 사후적 생계 보전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부동산과 달리 접근성이 좋은 금융시장을 활용해 재산소득의 수혜 집단을 늘리고자 한 정부의 의도는 옳았다. 하지만 결과는 자산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개인투자자의 손실로 돌아왔다.
문제는 정책 수단이 아니라 철학과 제도를 갖춘 소득정책이 우리에게 없었다는 데 있다. 고성장기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자리가 늘고 임금이 올랐으며, 집을 사면 자산이 불어났다.
고용과 부동산이 암묵적인 소득정책의 역할을 하며 중산층을 만들어냈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 메커니즘은 멈췄지만, 이를 대신할 소득정책은 설계되지 않았다.
그사이 소득정책의 이름으로 시행된 정책은 대부분 근로 장려금이나 기초 연금 같은 사후적 소득 보전, 즉 사회정책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분배 구조를 다루려 했지만, 철학적 합의 없이 출발한 탓에 곧 이념 논쟁에 갇혔다. 코스피 5000도 같은 한계를 안고 있었다. 유동성을 단기적으로 시장에 끌어들이긴 했지만, 그 유동성이 누구의 몫으로 어떻게 돌아가게 할지에 대한 설계는 없었다.
소득정책은 성장의 과실을 나누어 중산층을 형성하고, 그 중산층이 공동체를 떠받치는 다수가 되도록 하는 정책이다. 소득정책은 사회정책이 아니다. 생산에 참여하는 구성원 간 부가가치의 분배 구조를 건드리는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철학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소득정책은 어떤 철학 위에 서야 할까. 사회정책의 근거가 인도주의라면 소득정책의 근거는 ‘정당한 몫’이다. 가치 창출에 참여한 사람은 그 성과를 나눌 권리가 있다는, 기여에 따른 분배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근로자만이 아니라 기업에 자본을 댄 소액 투자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철학이 갖춰졌다면 이를 제도로 구현해야 한다. 첫째, 시장에 들어오는 돈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 34조원을 넘은 신용 융자가 보여주듯 주식시장 자금의 상당 부분이 단기 차익을 좇는 빚이다. 장기 보유와 연금 연계 투자에 세제 혜택을 집중해 ‘빚투’를 ‘장기 저축’으로 바꿔야 한다. 미국 중산층의 금융자산 형성을 뒷받침한 것도 401(k)라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곧 장기 투자 제도였다. 둘째, 성장의 과실이 실제로 투자자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배당과 주주 환원을 확대하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지배구조 개선이 없으면 주가 상승도 일부의 몫으로 끝난다. 셋째, 노동 소득과 자본소득을 연결해야 한다. 우리사주와 성과 공유제를 넓혀 일하는 사람이 재산소득에도 참여하게 해야 한다.
코스피 5000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어야 했다. 지수는 다시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성장의 몫을 누릴 수 있는 구조는 철학과 합의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 수치 너머를 보아야 할 때다.
출처: 이코노미조선(http://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