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금본위제(화폐의 가치를 일정량의 금 가치로 고정하고, 발행된 화폐를 금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통화제도)를 폐지하면서 달러는 이론적 가치의 기반을 상실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74년 미국은 헨리 키신저 국무 장관을 보내 사우디아라비아와 비밀 협정을 체결했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모든 석유 거래를 달러로 결제하고, 미국이 사우디 왕정의 군사적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 협정은 달러 안정과 사우디의 안보 우려를 동시에 해결하며 국제통화 질서의 새로운 기반이 됐다.
당시 OPEC(석유수출국기구) 최대 산유국이던 사우디의 영향력 아래 이란,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도 달러 결제를 채택했고, 1975년 페트로 달러 체제(중동을 포함한 주요 산유국이 석유 및 관련 상품을 수출해서 달러로 벌어들이는 수출 대금, 즉 오일머니)가 사실상 완성됐다. 그 결과 석유를 수입하는 국가는 달러를 확보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며 전 지구적 불태환 화폐 체제(화폐를 금 등 특정 실물 자산으로 바꿔주지 않는 통화 체제)가 자리 잡았다.
페트로 달러 체제는 달러 위상을 세 측면에서 강화했다. 첫째, 인위적 수요 창출이다. 석유 구매를 위해 전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하면서 지속적인 수요가 형성됐다.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자국 경제 규모를 넘어서는 통화 발행에도 비교적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는 ‘달러 특권’을 누리게 됐다. 둘째, 페트로 달러 재순환이다. 산유국은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국채와 금융자산에 재투자했고, 미국은 낮은 금리로 재정 적자를 충당할 수 있었다. 셋째, 준비 통화로서의 지위 강화다. 금태환이 폐지된 이후에도 달러가 교환·저장·지불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페트로 달러라는 신뢰 장치 덕분이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외환보유액 약 58%가 달러이며, 국제 외환 거래에서 달러 관여 비중은 88%를 넘는다.
최근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면서 위안화 결제 선박에는 통과를 허용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페트로 달러 체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미국 제재로 달러 결제망에서 사실상 배제됐고 은행 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에서도 퇴출됐다. 이후 러시아 루블화와 중국 위안화로 석유 거래를 이어왔다. 이번 조치는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거래 상대를 다변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다만 위안화 영향력은 아직 제한적이다. 2025년 기준 외환보유액과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은 각각 약 2%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 국가가 위안화 체제로 이동할 유인은 아직 크지 않다.
이번 사태는 페트로 달러 체제의 구조적 딜레마를 드러낸다. 1974년 협정은 석유의 달러 결제와 미국의 걸프 지역 안보 보장을 동시에 전제로 한다. 두 요소는 상호 의존적으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행동이 오히려 지역 불안을 확대한다면, 걸프 국가가 달러 체제를 유지할 유인은 약해질 수 있다. 미국은 이란 제재를 추진하면서도 호르무즈해협의 안정과 전쟁 조기 종식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달러 패권의 균열은 외부 충격이 아니라 미국 자국의 선택에서 비롯될 수 있다.
출처: 이코노미조선(http://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