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기고매체/일자: 이코노미조선(2025. 1. 20.)
ㅇ 기고자: 윤덕룡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ㅇ 온라인 기사 링크: 한국 경제, 피크 아웃보다 보텀 아웃 고민해야(윤덕룡 대표이사)
한국 경제의 피크 아웃(peak out·정점 통과)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피크 아웃은 경제가 일정 기간 성장세를 지속해 오다 정점을지나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감소하거나 침체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김세직 서울대 교수는 논문에서 1990년대 초 이후 한국 경제가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하고 있다는 법칙을 주장했다. 10년 이동평균을 이용한 장기 성장률 계산의 결과다. 한국은행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 수준이다. 2000년대 초반 5% 내외였던 잠재성장률은 2010년대 3% 초·중반, 2016~ 2020년 2% 중반 그리고 2024~2026년 2%로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데이터까지 업데이트하고 더 정밀한 기법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도 김 교수의 장기 성장률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경제성장 이론 관점에서 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총요소생산성, 노동 투입, 자본 투입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 경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하락세다. 특히 노동 투입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 이미 확정됐다.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사회 환경을 고려하면 노동 투입 감소에 따른 성장률 하락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자본 투입의 성장 기여도 역시 하락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든 이후 투자가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요소생산성은 우리 경제의 효율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자원 배분의 효율성, 기술 수준, 제도나 교역 환경 등을 포괄하는 수치다. 총요소생산성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구조조정 지연, 규제 개혁 실패,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증가 등이 주요 요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경제의 피크 아웃은 이미 기정사실인 셈이다. 진짜 문제는 우리 경제가 언제쯤 어느 수준에서 하락세를 멈출 것인가다. 즉, 바닥을 다지고 상승세로 돌아서는 보텀 아웃(bot-tom out⋅바닥 탈출)이 언제 가능할 것인가가 이제는 더 중요한 상황이다. 미국은 100년 넘게 경제성장률이 2%대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장기 성장률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의 생산능력, 즉, 총공급 역량이다. 총공급 역량은 단기적인 재정 정책이나 금융정책을 통한 총수요 관리로 개선되는 문제가 아니다. 경기 대응 정책보다는 구조적 대책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력을 키워내는 교육제도, 미래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지원 제도, 국제 협력망 구축 및 관리를 통한 안정적 무역 환경 조성, 정부와 기업의 거버넌스 개선 같은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구조적인 변화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하는 혁신과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혁신이나 정책은 선거제 기반의 민주국가에서 추진이 용이하지 않다. 집권당이 선거에 의해 교체되면 지속성을 가지기어렵기 때문이다. 정권 재창출에 대한 보장이 없어서 대부분의 정책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에서는 정부 대신 시민사회가 기반이 되어 구조적인 변화를 추진한다. 대표적인 것이 ESG(환경· 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그래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시민의 자발성에 근거한 사회성이 선진국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시민 간 ‘신뢰 자본’의 차이에서 찾는다. 시민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법과 경제 제도를 합목적적으로 운용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거래 비용이 줄어들고 위험 회피 비용도 감소한다. 그는 신뢰 기반이 부족한 나라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결국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1995년 발간한 ‘신뢰(Trust)’라는 저서에서 한국을 ‘신뢰 자본’이 부족한 국가로 분류했다. 한국은 가족 중심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여서 국가가 개입해 부족한 사회적 신뢰를 보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사회는 정부가 유능하지 않을 경우 선진국 진입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작금의 정치 현실은 30년 전 후쿠야마 교수의 분석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경제의 바텀 아웃이 그래서 더 염려스럽다.